6·25전쟁 3년간 미군을 비롯한 우방국 젊은이 194만여 명이 유엔군의 이름으로 참전해 전사자 4만 669명 등 14만 89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일 관계 강화해야 한·미동맹과 유엔사는 안보의 두 축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선제공격에 자극받은 북한의 도발 우려가 커지는 시점에서 70년 전 워싱턴 선언과 함께 유엔군사령부(UNC)의 존재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이처럼 북한의 중감위 무용론에 이은 군사정전위 무력화.
북한은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과 연계해 유엔사 해체를 전제조건으로 집요하게 요구해왔다.글 = 장세정 논설위원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 더 중앙 플러스관점의 관점 +尹.1950년 안보리 결의로 파병.
윤 정부는 가입 재추진 중 주일 유엔사 후방기지 유사시 역할 중요.53년 워싱턴선언으로 재파병 약속 73년 전 유엔 결의 아직 유효.
대신 의료지원국이었던 덴마크·노르웨이·이탈리아가 유엔사에 가입해 17개국으로 늘었다.
윤석열 정부는 6·25전쟁 당시 의료 지원을 해준 독일(서독)의 추가 가입에 적극적이어서 조만간 18개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북한은 유엔사가 1991년 한국군 장성을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로 임명하자 반발해 중립국감독위원회 북·중 측 국가인 체코와 폴란드 대표단을 축출했고.
미국을 압박한 이승만 대통령의 한·미동맹 체결 노력으로 1953년 8월 8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극적으로 가조인(정식 서명은 10월 1일)되고.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합의해 발표한 워싱턴 선언보다 70년 앞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보장할 중요한 안전장치가 마련됐던 셈이다.
송영길 유엔사는 족보 없다 폄훼 6·25 전쟁 당시 유엔 결의에 따라 전투 부대를 보내준 나라는 모두 16개국이었다.정전협정 포기 선언(1996년) 등 집요한 방해 공작에도 유엔사는 지난 70년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헌신적으로 임무를 수행해 왔다.